영상이 9분 34초에 이르면 익숙한 수학 교실과 다른 장면이 나온다. 학생들은 문제를 혼자 풀지 않는다. 짝과 의논하고, 한 명은 풀이를 설명하며 다른 한 명은 과정을 적는다. 정답을 먼저 맞히는 일보다 서로의 생각을 말로 확인하는 과정이 수업의 중심에 놓인다.

이 장면은 EBS 다큐멘터리K ‘세계의 교육 3부 모든 교육은 디지털, 에스토니아’의 일부다. 2023년 7월 방송된 원 프로그램을 EBS 다큐 채널이 2026년 2월 다시 소개했다. 영상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교육을 로봇, 수학, 협업 수업으로 보여준다.

유치원 코딩은 작은 화면 앞에 오래 앉히는 일이 아니다

영상 초반의 아이들은 자신이 입력한 명령에 따라 로봇이 선을 긋고 장애물을 피하는 모습을 바로 확인한다. 교사는 코드를 외우게 하기보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가”, “왜 여기서 멈췄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명령을 계획하고 실행한 뒤 결과를 고치는 짧은 순환이 반복된다.

에스토니아의 교육 홍보 기관이 소개한 ProgeTiger 자료도 같은 방향을 설명한다. 유아 단계에서는 Blue-Bot과 같은 로봇, 코딩 놀이, 애니메이션 앱을 활용하되 핵심은 놀이와 직접 해보는 경험이다. 별도 자료에서는 기기 없이 몸을 움직이며 조건과 순서를 익히는 활동도 유치원 프로그래밍의 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중요한 구분
에스토니아의 사례를 “유치원생에게 어려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조기에 가르친다”로 이해하면 핵심을 놓친다. 아이가 순서를 만들고, 친구에게 설명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수정하는 것이 먼저다.

9분 34초의 핵심은 협업과 메타인지다

지정된 구간에서 교사는 학생을 짝과 모둠으로 묶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른 학생에게 풀이를 말하려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상은 이를 메타인지 학습과 연결한다. 코딩과 수학을 따로 떼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을 말로 표현하는 수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접근은 AI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가 AI나 로봇이 내놓은 결과를 보기만 하면 소비자로 남는다. 반대로 실행 전에 경로를 예측하고, 친구와 이유를 나누고, 실패한 지점을 찾아 다시 명령하면 도구를 자신의 생각에 맞게 사용하는 경험이 된다.

국가 정책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교사의 수업 설계

에스토니아는 1990년대 ‘Tiger Leap’를 통해 학교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을 확충했고, 2012년 ProgeTiger를 시작해 프로그래밍·로봇·3D 기술과 교사 연수를 넓혔다. 2021년 기준 관련 활동에 에스토니아 유치원의 99%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했다는 공식 소개도 있다.

그러나 기기 보급률만으로 수업의 질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ProgeTiger는 교사 연수, 수업 자료, 장비, 지역별 교사 네트워크를 함께 지원했다.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교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아이가 어떻게 설명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유치원에서 바로 옮길 수 있는 네 가지

첫째, 큰 화면이나 로봇 한 대를 모두가 함께 보며 다음 움직임을 먼저 말하게 한다. 둘째, 앞으로·왼쪽·오른쪽처럼 짧은 명령을 순서대로 계획한다. 셋째, 실행 결과가 예상과 다르면 틀린 아이를 찾지 말고 명령이 어긋난 지점을 찾는다. 넷째, 디지털 활동 뒤에는 종이 미로나 몸동작 놀이로 같은 원리를 다시 표현한다.

이렇게 구성하면 유아 AI교육은 화면 시간을 늘리는 수업이 아니라 말하기, 협업, 소근육 활동과 문제 해결을 연결하는 수업이 된다. OECD도 디지털 환경에서 중요한 역량을 단순 도구 조작이 아니라 자기조절 학습과 계산적·과학적 탐구를 활용한 문제 해결로 설명한다.

AI교육이 필수라면,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다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에서 AI를 완전히 떼어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더 이른 나이에 더 많은 기기를 주는 것이 답은 아니다. 에스토니아 교실이 보여주는 출발점은 분명하다. 아이가 목표를 말하고, 명령을 계획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게 하는 것. 유치원 AI교육의 기준은 사용 시간이 아니라 이 과정이 실제로 일어났는가에 있어야 한다.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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